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태지와 아이들 3집 (문단 편집) == 문화 대통령이 되다 == [[서태지와 아이들 1집|1]], [[서태지와 아이들 2집|2집]]이 기본적으로 사랑 타령에 댄스 음악인데 반해 3집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노래가 많았다. 또한 3집을 기점으로 사회 시대상을 반영하는 노래가 많아졌다. 타이틀곡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주제인 <발해를 꿈꾸며>였다. [[김대중]] 前 대통령은 이 곡을 듣고 서태지를 높이 평가하였으며, 나중에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이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 <발해를 꿈꾸며>는 교과서에도 실렸는데, 요즘은 대중가요가 교과서에 실리는 일이 종종 있지만[* 이마저도 교과서 개정 등으로 인해 상당히 오래된 대중가요가 실리는 경우가 많다.], 발해를 꿈꾸며가 처음 실렸을 때는 흔치 않은 일이라 기사화 되며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교실 이데아>로 입시 제도를 비판했다. 이전까지 서태지가 청소년, 청년층을 대변한 가치는 자유와 도전 같은 추상적 내용이었다면 교실 이데아에선 교육이라는 구체적인 논쟁거리를 던진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민중가요]]라고 해서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 자체는 엄연히 불려지고 있었지만, 포크송 위주였기 때문에 이미 당대 청소년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이러한 사회비판적인 노래를 당대의 인기 장르와 결합하는 식으로 불렀고, 서태지는 단순한 10대들의 우상을 넘어서서 '''문화대통령'''으로 불리게 된다. 이 당시의 시대배경을 보자면 사회가 문민화, 자유화되는것과는 상관없이[* 물론 1989년 중순부터 1992년까지는 전교조를 불법화, 학생운동가 고문 및 탄압 , KBS 사태, 즐거운 사라 출판금지 사건에서 볼수있듯이 자유화가 후퇴하는 흐름이 있었다.] 1986년부터 [[교복부활]]이 시작되어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할 시점에는 교복착용이 완전히 재정착되었고, 청소년 일탈을 막는다는 명목하에서 학생 두발단속도 염색이나 장발, 파마만 아니라면 어느정도 풀어주던 1980년대에 비해 크게 강화되어, 심하면 1970년대식으로 빡빡머리와 단발을 강제 하는 학교들도 종종 나타났고, 그러면서도 체벌남용과 촌지는 여전히 횡행하는 등 당대의 청소년들은 사회전반의 자유화와 문민화의 흐름에서 한창 소외되었다.[* 물론 당시에도 체벌남용이나 두발자유화, 교복의 불편함 같은 문제점은 진지하게 다루어졌던 문제점이기는 했지만, 당대 교육계의 관성과 행정편의주의로 인해서 교육현장에서 무시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사실 입시위주 교육과 과도한 사교육으로 인한 학생 혹사 문제는 이미 박정희때부터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받아왓을 정도로 유서깊었기 때문에 교육문제 비판 자체는 특별한것은 없었지만,[* 2020년대 이후로 대학정원이 남아도는 사태가 벌어진것도 이런 교육열을 대학진학률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봤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일선학교에서 대학을 보내야된다는 이유로 청소년들의 자유와 개성을 오히려 억압하는 세태를 노골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에 화제를 불러일으킨것이었다. 문화 대통령으로 등극하는 데는 위 두 곡이 가장 주목을 받았지만 소재의 다양성을 늘렸다는 점에서 <[[내 맘이야]]>, <[[제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곡도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3집 컨셉으로 치마를 입고 나와 나름 충격을 안겼다.[* 처음에 이주노도 이 선택을 두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아마 내 맘이야에 나오는 가사 내용을 실제로 써먹은 듯 하다. 이후 치마 콘셉트는 조금 순화되어 삼국시대 복장 비슷한 걸로 바뀌었는데 치마 콘셉트는 발해 왕자의 이미지를 살리려는 당시 코디네이터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http://www.xacdo.net/zboard/view.php?id=puum&page=7&sn1=&divpage=1&category=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53|링크]] 원래 전공이 한국 전통 의상이었기 때문에 바지 위에 덧입은 치마가 금관조복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생활한복]]에 가까운 의상을 제작해 입히기도 했다. [[파일:서태지 개량한복.jpg|align=center]] 이 사진은 1995년 2월호 잡지에 실린 것으로, 오로지 잡지 인터뷰용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이때 서태지는 "교실이데아가 아니라 서당 이데아예요"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파일:발해를 꿈꾸며 복장.jpg|align=center]] [[1995년]], 3집 활동을 마무리하는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 때 <발해를 꿈꾸며>를 부르며 입었던 의상이다. 앞서 언급한 금관조복을 연상케 하는 스타일이다. 음악잡지 '뮤직라이프' 1995년 2월호 특집화보에 실렸던 사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